대학사계

대부분의 교수들은 마주치는 학생들의 학년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나이 차이라는 것이 있어 봤자 두어 살 남짓인 데다, 재수생과 휴학생이 많아 나이로 학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갓 입학한 새내기는 비교적 골라내기가 쉽다. 뭔가 어색한 겉모습 때문이다. 예전에 한번 봄학기에 1학년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어린 티가 줄줄 흘렀고 어떤 아이는 코도 흘리는 것 같았다. 물론 이들도 한 학기가 지나면 몰라보게 달라진다. 적어도 겉으로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세태가 바뀌어 아예 입학 전에 교복스타일의 고등학생 티를 싹 씻고 나타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새내기들을 구분해 내는 비결이 하나 있다. 바로 얼굴 색깔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그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광택이 넘친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지의 세상으로 진입한 뿌듯함과 기대감이 가득하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날 무렵쯤 되면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와 배우는 내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못 따라갈 수준이라 보기는 어렵다. 처음 접해보는 학문 분야도 있지만 1학년 수업은 대부분 언어나 기본 교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수업내용의 이질감이 그렇게 크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입시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부 자체의 압박감을 견디는 면역 체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뭔가 고등학교와는 확실히 다른 환경적 요인이 있기 때문에 적응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입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율의 영역으로 향해 가는 변화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 생각은 오히려 정반대다. 새내기들이 시름에 빠지는 것은 대학이 고등학교와 너무 달라서가 아니라 너무 똑같다 느끼기 때문이다. 타율적 학습이 아니라 자율적 분위기의 수업 환경,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진리와 세상을 논하는 교수, 강요된 짝이 아니라 내 손으로 찾는 친구, 그리고 강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체험 여행을 떠날 기회 등, 입학을 앞둔 예비 새내기에게는 대학 생활이 꿈의 무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막상 수업이 시작되고 한 학기가 다 지나가는데도 대학 캠퍼스에서 기대했던 특별함이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보통 여섯 과목이 넘는 수업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공강 등 자유시간이 있긴 하지만 예습, 복습을 하다 보면 남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따로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새 친구를 만들 기회도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 옆자리 짝과 가까워지듯 학번이 비슷해 교양 수업을 함께 듣게 되는 친구들끼리 자주 어울리게 된다. 게다가 대학교수들은 너무나 거리감이 느껴진다. 다들 자기 연구나 활동에 바쁜 것 같아 접근하기가 어렵다. 학교 앞 선술집에서 사회문제를 놓고 교수와 열띤 토론을 벌인다는 것은 영화 속의 얘기에 불과하다.

나의 대학 새내기 시절 역시 비슷했다. 입시 공부를 할 때와 달리 형식적인 자유로움은 늘었지만 실질적인 캠퍼스 분위기는 고등학교 교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중에 학교 밖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처음에는 같은 반에 배정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무엇보다 공부가 재미없었다. 국어, 영어, 역사, 과학 등 미리 정해진 교양과목들을 의무적으로 들으면서 ‘이것이 고등학교 수업과 뭐가 다른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특히 언어 영역의 과목들은 입시공부 하던 때와 내용면에서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자유로운 토론은커녕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일방통행식 강의가 대부분이었다. 교수를 강의실 밖에서 만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나에게 배정된 지도교수와 의무 면담을 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포함한 한 무리의 학생들이 그분께 할당된 것이다. 바쁜 교수가 학생 일 인당 줄 수 있는 시간은 어차피 제한적이었다. 나 역시 한 10분 정도 면담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난 이 교수를 평생 다시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분은 내 대학시절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은 교수 중 한 명이다. 그 10분간의 면담은 방황하던 당시의 나에겐 충격이었고, 훗날 내가 도전의 진정한 의미를 스스로 터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내가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하는 지금도 그 때의 경험이 가끔 떠오른다. 별로 안 좋은 추억이긴 하지만.

교수 연구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벽면 서가에 빽빽이 꽂힌 책을 보면서 역시 교수가 고등학교 선생과는 뭔가 좀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질문부터 했다.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길래, 아직은 딱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학생이 돼가지고 장래에 뭘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 다음 대화는 더 황당했다. 왜 서울대를 선택해 들어왔느냐 묻길래, 나는 성적이 되니까 온 것이지 달리 학교의 특징을 본 것은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이 교수는 길길이 뛰며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 엘리트들이 모인 서울대를 오면서 그 정도의 생각도 안 해봤느냐는 것이다. 아마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일원으로서 사회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따위의 답을 원했던 것 같다. 마치 5수를 해도 서울대를 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이분은 자신이 일찍이 목표를 세워 교수가 된 과정을 일종의 우월한 사례로 나열하면서 면담을 마무리했다.

교수 연구실을 나오며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교수만 아니었으면 뭐라고 말대꾸를 했었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당시 대한민국 천지 어느 고등학생이 대학을 특징을 보고 선택한단 말인가. 그저 성적순대로 담임선생이 점지한 대학에 원서를 넣는 게 공식이었다. 또한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며 입시 공부만 하던 학생이 대학에 들어왔다고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고 미래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커리어 선택이 존재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제 막 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을 시작한 학생에게 미리 점지해 놓은 인생 목표가 없다고 야단을 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예외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분 자신이 우리와 다른 길을 걸었을 수 있다. 유식하고 재산 많은 부모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 손잡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중학교 때 이미 장래희망을 교수로 정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경제 여건과 교육 환경을 고려했을 때 대다수의 내 또래는 나와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교회나 절에 가서 자식 대학 붙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쨌거나 이 면담 사건은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금이라면 그 교수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스무 살도 안 된 당시의 나로서는 뭔가 내게 잘못이 있다는 착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나는 서울대가 다른 대학과 어떤 점에서 특별히 다른지 알 길이 없었고, 아무리 마음을 정해보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대학의 교양과목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우울하던 차에 교수와의 첫 만남이 이렇게 끝나니 나는 더 이상 학교 캠퍼스가 정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날 이후 나는 졸업 때까지 더 이상 지도교수를 찾아간 적이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10분의 지도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내게 점지된 그 교수가 좀 특이한 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의 생각은 엘리트 의식에 젖어 지내는 많은 교수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내가 지도교수 역할을 한다. 내게 찾아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전의 내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그 본질에 있어 하나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시점이 더 빨라진 탓에 자신의 삶이나 희망을 생각해볼 여유는 더 없어진 것 같다. 취업의 어려움을 반영해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도 더 팍팍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일상이 단조롭고 피곤하다 해도 이들에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 역시 조심스럽게 자기 인생과 커리어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꿈을 어디에서, 어떻게 펼칠 지가 확실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그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봤을 때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어떤 문제이건 ‘I don’t know’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안다고 하면 더 위험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제 자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학생들이 대학이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대학 당국과 교수들의 책임이다. 설사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주제의 과목을 강의하더라도 대학에서는 그 방식이 달라야 한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수업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또한 나의 경험처럼 설사 안 좋은 추억이 되더라도 교수를 직접 만나야 학생들은 뭔가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교수들은 학생들의 어려움을 자상하게 들어주고 그들 스스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 가도록 도우려 할 것이다. 학생들은 배우려고 대학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전공 지식이건, 교양 상식이건, 사회 문제이건, 인생을 설계하는 방법이건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교수들이 할 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라고 말한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불안할 수도 있지만, 이는 동시에 나에게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십 중반에 벌써 육십 중반까지 할 일이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그 인생이 지루하겠는가. 돈이 많고 세속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사람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설 때 희망을 갖고, 하나씩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갈 때 보람을 느낀다. 나는 지금의 나이에도 나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혼자 즐거워한다. 드라마 작가나 전문 요리사가 되겠다는 예전의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고, 기회가 된다면 작은 규모라도 좋으니 뜻 맞는 사람들과 회사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꿈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TV 드라마는 챙겨보고, 옷은 안 사 입어도 먹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별 상관 없다. 나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니까. 

인생을 멋있게 설계하려면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법과, 불필요한 위험을 줄이는 법을 모두 익혀야 한다. 새내기들처럼 아직 어릴 때는 아무리 주변에서 권해도 고시와 같은 외줄타기 커리어 선택은 잠시 미루는 것이 좋다. 이들이 감수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신 적어도 대학 생활의 처음 절반은 세상에 어떤 미래가 존재하는지, 나의 진정한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찾는데 쏟아 부어야 한다. 그래도 자신이 없으면 나머지 절반도 그런 탐색과 모험에 투입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의 문제는 나 스스로 찾고,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직면하는 불확실성은 그리 겁낼 필요가 없다.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학생에게 해답부터 가르치는 어리석은 교육은 대학 입시까지로 충분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또 다시 해답을 들고 온다면, 그것이 부모건, 교수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시절의 나는 겉보기에는 얌전한 학생이었지만 내 인생에 관한 한 지독한 반항아였다(11.09.12).

 1 2 3